박 이사가 자신의 방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레코드판 하나를 발견한다. 아마 정품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친구네 집에서 빌려와 놓고선 돌려주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박 이사가 빙그레 웃음 짓는다. 필리핀 가수 프레디 아길라의 첫 음반,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네가 태어나던 그날 밤 우린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코드 진행이 간단해서 쉽게 따라 부르고 흥얼거렸던 노래, 그러나 정작 그 가수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노래, 어렸을 적 박 이사가 라디오를 들으며 막연하게나마 필리핀을 동경하기도 했던 노래, ‘아낙(Anak)’이다.
‘아낙(Anak)’은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자식(아들)’이라는 뜻이란다. 이 노래는 아들이 태어나서 매우 기뻤던 기억부터 자식이 성장하여 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품을 떠난 뒤의 걱정까지 담고 있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노래인데, 가수 자신이 법조인을 원하는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가수의 꿈을 안고 가출했던 경험을 담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속을 썩이지 않은 아들이 세상 어디 있을까? 박 이사도 아버지를 떠올린다. 한때는 지상 최대의 적이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상당히 불쌍한 남자로 기억되는 존재. 앗! 박 이사는 자기가 아들만 셋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고개를 흔든다.
프레디 아길라(Freddie Aguilar)가 1978년에 어떤 가요제에서 부른 ‘아낙(Anak)’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었다. 노래가 쉽고 사람들의 보편적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에 아주 많은 나라에서 번안곡으로도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노래가 빌보드 차트 상위에 올랐을 무렵 미국 제작자들은 아길라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미국식 팝가수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조국 필리핀으로 돌아가 빈민가에 정착한다. 그리고 필리핀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저항과 민주화의 도구로 자신을 던진다.
박 이사는 필리핀을 생각한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못지않게 필리핀의 근현대사도 굴곡이 심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오랜 식민지와 독립투쟁, 독재와의 싸움, 국민 분열과 통합의 과제, 권력 부패와 빈곤 문제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은 한국전쟁 참전국이었고 한때 우리 원조국이었다. 또한 오늘날 두 나라 간의 인적 물적 교류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요즘 우리의 필리핀에 대한 생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특별한 근거도 없이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더구나 필리핀에 가서 못된 짓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아 현지인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고 하니 부끄럽기까지 한 일이다.
박 이사가 먼지 앉은 턴테이블 위에 음반을 올린다. 아직 소리가 쓸만하다. “눙 이실랑 카사 문 동이토(Nu’ng isilang ka samundong ito)…….” 흐흐흐. 웃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어떤 언어인지도 모르면서 따라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진작부터 이놈의 턴테이블을 내버리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이젠 직장에서 물러나 제방 먼지나 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이 물건 따라 돌아간다. 너는 낡았고 나는 늙었구나! 낡은 턴테이블을 버리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나처럼 늙은 너를 그동안 구박해서 미안하다고, 앞으로는 그런 생각 절대 하지 않으리라고, 박 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장진규(조경 노동자)